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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읽는 영화] 스픽 노 이블 원작 줄거리,결말,해석 (2022) Speak No Evil

 
 
기본 정보

  • 개봉 : 미개봉 / 26회 BIFAN 상영작(2022년) / 97분 / 덴마크
  • 장르 : 호러 / 스릴러 / 드라마
  • 감독 : 크리스티안 타프드룹
  • 출연 : 모르텐 부리안 / 시셀 시엠 코흐 / 페드야 반 휴엣 / 카리나 스뮐더러스 / 리바 포르스베리

 
 

줄거리 (모든 내용 포함)

비외른(남편),루이스(아내),아그네스(딸)

 

[자칭 : 샹놈 가족] 패트릭(남편),카렌(아내)아들(아벨)

 
덴마크 출신의 비외른 가족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로 여행을 떠난다. 가족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같은 숙소에 머무는 패트릭(샹놈)의 가족들을 만난다.
패트릭(샹놈) 가족은 네덜란드에서 왔으며, 패트릭은 본인을 의사라고 소개하며 비외른의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과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서로의 거주지에 대해 물어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여행을 마친 후 다시 평범한 그들만의 일상으로 돌아가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런데 며칠 후 패트릭(샹놈)의 가족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좋은 시간을 다시 한번 보내고 싶어서 본인들이 살고 있는 네덜란드의 집으로 초대할 테니 오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네덜란드에 도착을 한 비외른의 가족. 처음에 패트릭(샹놈)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필요이상으로 장애를 가진 자신의 아들에게 폭력적으로 대하는 패트릭(샹놈)과
 
외식을 하러 가자고 했지만 아이들을 두고 간다는 건 출발 직전에 말을 해주는 등.
 
 

 
 
또한 외식중에 패트릭(샹놈)은 아내와 함께 춤을 추게 되는데, 당황스러울 정도의 스킨십을 비외른 부부에게 선보이며 약간의 불쾌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집으로 오던 길에 차 안에서 엄청난 소리로 음악을 켜며 달리는 패트릭(샹놈)에게 비외른의 아내 '루이스'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버린다.
 
 

 
 
이 외에도
 
- 루이스에게 말도 안 하고 루이스의 딸을 데려가서 본인의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버리는 패트릭의 아내 '카린' (남편 패트릭은 옆에서 홀딱 벗은 채로 잠을 청함)
- 식사 중 남의 딸에게 끊임없이 참견하는 패트릭의 아내 카린
- 혀가 없는 장애를 가진 아들이 춤 좀 못 췄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물건을 던지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패트릭
- 의사라고 얘기했던 패트릭은 알고보니 무직
 
.. 대화중에도 미묘하게 사람을 무시하는 등등
 
처음의 따뜻한 모습과는 전혀 상반되는 불편한 상황들은 점점 불길함으로 변했다.
 
 

 
 
사실 그들이 이곳을 떠나려고 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딸인 아그네스가 소중한 토끼인형을 두고 나왔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가져가려던 순간
패트릭(샹놈)과 카린(샹련)의 진심 어린 사과와 조금만 더 있어달라는 부탁으로 더 머무르게 되었다.
 
 

 
 
그렇게 또 호의에 못 이겨 머무르게 되고 비외른은 패트릭(샹놈)에게 마음의 문을 열면서 둘은 내적친밀감을 쌓게 된다.
그러나 계속되는 아이에 대한 참견과 폭력적인 모습으로 인해 마지막날이라 생각하고 떠날 생각을 하게 될 때쯤..
 
 
 

 

지금부터 결말 등장, 스포주의!

 
 
 
 
 
 
 

 
마지막날이라 생각하고 잠을 청하던 비외른은 새벽에 잠을 깨고, 집 앞의 불 켜진 창고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향한다.
 
 
 
창고의 선반에 진열된 수많은 카메라와 벽에 붙여진 사진들... 사진의 주인공들은 아이를 가진 가족들의 모습이었고,
 
패트릭부부(샹놈부부)가 아닌 처음 보는 부부와 함께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아벨(샹놈의 아들)을 발견하게 되고 아주 심하게 잘못되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그렇게 가족에게로 돌아가던 중 창고 옆 불이 켜진 작은 수영장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시체가 된 아벨(샹놈의 아들)을 발견한다.
 
비외른은 자고 있는 아내와 딸을 깨우고 당장 이곳에서 탈출하기로 한다.
 
 
 

 
 
아내 루이스와 딸 아그네스를 데리고 차로 탈출하던 중, 그들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오던 차량을 발견하게 되고 따돌리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차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비외른은 아내와 딸에게 차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얘기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러 떠났지만 시골이라 그런지 아무도 찾을 수 없었고, 다시 차로 돌아왔으나 아내와 딸이 사라진 걸 알아챈다.
 
절규하며 그들을 찾아 헤매던 비외른의 앞에 아까부터 따라다녔던 차가 그의 앞에 섰고
 
 

 
 
차에서는 패트릭(샹놈)이 내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비외른에게 차에 타라는 말을 건넨다. 다행히 차 안에는 루이스와 아그네스를 카렌이 안전하게 보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패트릭은 돌변하며 비외른을 죽도록 패버리고
카렌(샹련)은 영화 초반에 나왔던 남자 베이비시터와 함께 뒷좌석에 타 있는 루이스에게 딸을 내놓으라며 위협한다.
 
 

 
 
카렌(샹련)은 루이스에게 아그네스를 넘기라며 협박했고, 그녀가 저항하자 베이비시터는 루이스를 못 움직이게 제압했다.
 
그리고 카렌은 가지고 있던 가위를 이용해서 아그네스의 혓바닥을 그 자리에서 잘라버린다.
 
그리고 베이비시터는 아그네스를 데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딸을 납치하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절규하는 루이스.
 
패트릭(샹놈)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허탈함과 공포로 가득한 표정으로 허공만 응시하는 비외른.
 
이 둘을 태운 패트릭 부부는 조금 더 가서 차를 세운다.
 
 
 

 
 
패트릭 부부는 그들에게 차 앞에서 옷을 벗으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길 아래의 채석장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한 후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머리에 돌을 맞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피를 확인한 루이스에게 다시 날아오는 돌..  그 자리에서 루이스는 기절해 버린다.
 
쓰러진 아내를 끌어안으며 울고불고 소리치는 비외른의 머리에도 돌이 날아오고..
 
패트릭과 카렌은 총이나 칼이 아닌 '돌팔매질'로 그들에게 돌을 뿌려대기 시작한다.
 
 

ㅁㅁ

 
 
결국 온몸에 돌이 찍힌 상처로 가득한 채 시체가 된 비외른과 루이스를 보여주며 새벽동이 튼다.
 
 

 
 
영화는 아그네스를 태우고 어딘가로 향하는 패트릭과 카렌,
 
그리고 그들의 자식이었던 아벨처럼 소극적인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는 아그네스를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영화의 해석

 
 

도대체 왜 안 도망쳐?

 
왜 이렇게 답답한 전개가 펼쳐지는가를 알기 위해선 우선 인물들의 성격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외른(덴마크) : 아내 '루이스'와 딸 '아그네스'의 가장. 남에게 '예의'라는 구실로 제 할 말을 못 하는 소극적인 성격. 더불어 업무적으로도 매번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야만 하는 현실에 매우 지쳐있는 남편. 그러나 딸에 대한 애정만큼은 '히어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각별한 아빠.
 
루이스(덴마크) : 남편 '비욘'보다는 다소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 채식주의자이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 즉시 할 말은 하는 엄마. 그러나 매번 사과에 호의적이다.
 
 

 
루이스의 경우 불편한 상황이더라도 사과를 받았다면 바로 수긍하고 넘어갔으며, 비외른은 오히려 '눈치'와 '이미지'를 사수하기 위해 그 목소리를 일부러 감추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눈치'와 '이미지' 때문에 목소리를 못 내는 현대의 성인상
 
옳지 않음에, 무례와 결례함에, 비합리적임에, 부당함에 맞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네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대충 쌈마이 같은 말도 있듯이 내 목소리 하나 감춰서 모든 상황이 좋아진다면 기꺼이 희생하여 문제 되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이미지도 사수할 수 있을뿐더러 상대방의 기분 또한 맞춰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유튜브 <자취방 남자>

 
그리고 왜 일찍 탈출하지 못한 것인가에는 사실상 비외른의 역할이 컸다.
영화 초반, 아그네스는 토끼인형을 잃어버렸고 비외른은 욕이 나올 정도로 짜증이 났지만, 그저 딸을 위해 처음 온 이탈리아의 이곳저곳에서 인형을 찾으며, 결국엔 인형을 찾고 패트릭으로부터 '히어로'라고까지 인정받는다.
 
그리고 모두가 생존할 수 있었던 첫 번째 탈출순간에, 딸 '아그네스'는 다시 한번 토끼인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저 인형일 뿐이지만, 울고 있는 딸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비외른은 굳이 불쾌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는 딸의 모습을 보며, 불쾌한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하는 비외른 [출처 : 유튜브 <자취방 남자>]

 
그는 그저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것은 억눌려있던 무언가를 일깨운 것이기 때문이다.
가식적이고 소극적인태도의 본인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도 박했을 터. 인형을 찾아줬다는 이유로 다른 한 가장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은 본인의 가슴 안에 깊이 박힌 사건일 것이다. 딸이 인형을 잃어버리는 똑같은 사건이 발생하자 '히어로'같은 아빠로서의 '무언가'가 자극된 것이다.
 
아마 패트릭에게 그런 칭찬을 듣지 않았었다면, "저번에도 네가 부주의해서 인형 잃어버렸지? 이젠 안돼"라는 마음으로 그냥 가지 않았을까? 인형은 고작 인형일 뿐 새로 사주면 되고 어서 불쾌한 이곳에서 나오는 것이 먼저였을 것 같다.
(심지어 아그네스의 토끼인형은 차 구석에 떨어져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그 집 앞에 도착하니 발견함) 
 
 
 

결론은,

 감독은 '선의'로 접근해도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겸손'으로 대응해도 신뢰할 수 없는 오늘날의 불투명한 인간관계에 대한 현실적 비판의 목소리를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불편함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소극적 태도와 무례한 언행을 들어도 사과 한 번이면 넘어가는 관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처음 보는 사람' 일 것이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 설득을 가하는 것은 영화의 제목이다. 'Speak No Evil. 악을 말하지 말라' 도대체 왜 이런 제목일까?

 
일본의 도치기현 닛코에 있는 도쇼궁에는 세 원숭이 조각상이 있다. 이 세 마리는 각각의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의 뜻은, '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이다. 모두 '악한 것'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은 '악을 말하지 말라'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주인공인 비외른과 루이스에게서 나타난다.

 
영화를 보면, 그들은 패트릭과 카린의 집에서 벌어지는 불쾌한 일들에 대해서 '서로 말하지 않는다'.
루이스가 샤워를 하던 날 패트릭으로 의심되는 자가 화장실로 들어왔지만, 이 사실을 비외른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외른은 아벨의 혀가 선천적으로 없는 게 아닌, 잘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루이스에게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의니까. 그리고 그런 것을 얘기하지 않는 것이 자신들이 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이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타인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행위 또한 '선의'라는 감정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선의를 받은 입장에서, 불편하게 남의 가정사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이러한 '인간의 선(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잘 이용하는 것이 바로 '악(惡)'이라는 것이다.
악은 언제나 앞에서는 장미를 내밀지만 등 뒤에서는 칼을 준비하고 있다. 결국 감독은 '악이 어떻게 선의 중심으로 침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뺏기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느껴지겠지만, 애초에 악에게 이성적인 것을 바라는 건 모순이다. 왜냐하면 악의에는 이성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을 말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건 반대로 말하면 결국 '악의 행동을 방관하는 행위'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걸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총평

이 영화를 보고 몇 시간 동안 기분이 무척이나 더러웠다. 일단 보는 내내 답답해서 죽어버릴 뻔했고 그 누구에게도 이영화를 본다면 절대 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와 관련된 유튜브 댓글을 보면 기분 더럽다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리뷰를 작성하며 해석을 파헤치니 영화가 다르게 느껴지긴 했다. 사실 주인공의 행동은 정말 일반적인 사람들의 반응이 아닐까 싶다. 저 먼 곳에서 우리를 보고 싶다며 집에도 초대해 주고 음식도 대접해 주는데, 선만 넘지 않으면 잘 지내다 가고 싶은 게 보통의 사람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패트릭 부부의 언행에 있어서 뭔가 싸하면서도 애매~한 부분들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악인'인 패트릭 부부는 그것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해서 비외른 부부를 삶아 먹었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피해자인 비외른 부부의 답답함을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토끼인형 가지러 가는 선택은 정말.. 아쉽다.)
 
또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여행 가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초대한다고 따라가지 좀 마 ! ! !
 
 

인용 : https://www.youtube.com/watch?v=felR-dlobqM&t=301s&ab_channel=%EA%B0%80%EC%9D%B4%EB%93%9CB

 

https://blog.naver.com/wookiecinebox/222885710198